취하다의 사전적 풀이를 보면 '(사람이 술이나 약 따위) 기운에 의해 정신이 몽롱해지고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다'이다. 醉자가 술 취할 취자이니 술에 취하는 게 취함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또한 누구나 술을 마시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확실히 취하게 되니 의심의 여지도 없다.
그런데 술 말고도 취하게 하는 게 있으니 바로 꽃향기가 아닐까 한다. 내가 아는 꽃향기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좁지만 작년에 청매화를 촬영하며 청매 가까이에서 숨을 깊게 들이쉬니 그 향기에 정신이 아련해 옴을 느꼈었다. 처음으로 매향에 취한 거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카시아 향에 이어 두 번 째 좋아하는 꽃향기는 매향을 꼽기로 했다.
오늘은 백서향의 꽃향기를 맡아보고 싶었다. 수선화, 감귤꽃의 향기와도 닮은 백서향의 향기는 강렬해서 가까이서 맡으면 거의 마취 수준이다. 하지만 온 숲에 퍼지는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걷노라면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추운 겨울에 향기만큼이나 강한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곶자왈에 새봄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