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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Good Choice/꽃과 이미지

한라천마

촬영 2015. 9. 10

 

 

2003년에 7개월 동안 사진을 배우고 무얼 찍을지 고민하다가 이듬해에 105mm 마이크로 렌즈를 중고로 사서 흔히 보이는 야생화를 찍으러 혼자 돌아다녔다. 접사하면서 보이기 시작한 미시微視의 세계는 감탄할 만큼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도 들꽃을 보면 내려서 위치를 잘 봐두었다가 카메라를 가져가서 촬영하기도 했었다. 어떤 장르의 사진을 하던 결코 쉬운 사진은 없지만 야생화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볼 수 있고 제주는 겨울에도 드물게나마 피어서 꽃 사진을 즐기기엔 충분하다. 또 풍경 사진과 달리 비 오거나 바람 불지 않으면 날씨와 시간에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2006년 10월에는 나도 DSLR 카메라를 샀다. 크롭 바디지만 필름 없이 촬영할 수 있어서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다. 가녀린 들꽃은 미풍에도 흔들리기 때문에 선명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는 같은 구도로 수십 컷을 찍을 수밖에 없다. 필름 사진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런데 어느 작가님은 디지털이 흉내 낼 수 없는 필름의 색감이 좋아서 외국으로 출사할 때 공항 검색대에서 엑스레이를 통과하면서 혹시 가방 하나 가득한 필름이 손상되지 않을까 조바심한다고 들었지만 나는 그런 감성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DSLR은 필름 값과 현상비 안 들어가고 또 노출을 걱정하지 않아서 편하다.


야생화 사이트에도 가입해서 사진을 올렸다. 꽃 이름 잘못 알아서 포스팅했다가 공개적으로 망신당하기도 했고 내가 올린 사진에 간혹 '눈이 호강합니다.' '잘 찍으셨습니다.' '예술입니다.'라는 말치레를 곧이들어서 우쭐하고는 내가 사진을 잘 찍는 줄 오해하기도 했었다. 몇 년 동안은 부지런히 사진 올리고 동호회 활동도 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꽃보다 풍경에 마음이 쏠렸고 자연스레 야생화는 덜 보러 다녔다. 생각해보면 이른 봄날 추위도 가시지 않은 곶자왈을 돌아다니며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등을 담았던 때가 즐거웠었다. 아마 지금 거린사슴 숲에는 한라천마가 피기 시작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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