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저녁 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셨다.
"산행합시다~"
"몇 시에 갈까요?"
"우리 집에서 다섯 시 반에 출발해요."
간식으로 빵을 사고 배낭을 꾸리고 스패치를 찾았으나 내 방에도 제사를 지내는 방
그 어디에도 스패치 그림자도 못 봤다.
겨울 산행을 자주 해야 잃어버리지 않는데 아이젠과 이산가족을 만들고 말았다.
선생님께 헌 거라도 빌리는 수밖에.
네 시에 일어나 밥 먹고 선생님 댁에서 핫팩도 붙이고 헤드 랜턴과 스패치를 빌려서
어리목에 도착하니 여섯 시 반이다.
그런데 직원이, 두 사람만 산행하는 건 위험하니 몇 사람 더 오면 입산하라고 한다.
밤새 많은 눈이 내려서 상황을 보며 입산통제도 고려하고 있다는 거다.
휴게실에서 이십여 분 기다리니 택시 한 대가 들어오고 네 분이 휴게실로 오셨다.
그래서 일곱시 쯤 산행 시작했다.
다리에서 계곡을 촬영한 후에 선생님은 먼저 올라가시고 나는 십여 분 뒤에 따라갔다.
그런데 이십 미터도 채 걷지 못하고 숨이 찼다.
그동안 운동을 게을리해서 근육이 약한 건지 기가 허한 건지는 모르지만
한번 쉴 때마다 선 채로 이 분 정도씩 쉬어가며 오르기를 얼마나 했을까.
숲길이 끝나는 사제비동산 앞에서 선생님은 촬영하고 계셨고 나도 카메라를 꺼냈다.
칠십 넘은 분이 혼자 러셀 하면서 오르셨으니 존경해마지 않을 수 없다.
산행하는 내내 눈발이 흩날리고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스노몬스터와 나무를 촬영하며
간식 먹는 시간 외에는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하산할 무렵 하늘이 걷히고 화구벽도 보였지만 상고대가 형성되지 않아서 시커멓다.
그래도 화구벽을 넣어 셔터를 눌렀다.
스노몬스터는 룸살롱 같은 분위기가 좋고 화구벽은 석고상처럼 하얗게 되어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시지만 다 갖추면 산행할 때마다 모두 좋은 사진 얻을 것이다.
오랜만에 선생님과 출사했고 흔히 하는 말로 동화 같은 하얀 세상을 실컷 즐기면서
솜을 깔아놓은 듯한 탐방로를 하산하는 기분이야말로 동화 속의 주인공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