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휴무일이 맑은 날엔 새벽부터 바닷가 여명을 촬영해야 하는데
오후에 근무하면서 일찍 일어나기도 힘들고, 또 어머니가 밭일하라고 하셔서
낮에 촬영갈 수밖에 없다.
마른 고구마 줄기는 마소(馬牛)의 건초로 좋은데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서
군데군데 모아놓고 불을 지폈다.
아직은 줄기가 덜 말라서 시원스럽게 타면서도 연기가 많이 났다.
불이 거의 꺼져갈 무렵에 산림청 산불방지 차량이 서고 직원 한사람이 오더니
불씨관리만 잘해주라고 한다.
오름 정상에서 근무하던 산불감시원이 연기를 보고 신고했다고.
다섯 시가 다 되니 마땅히 출사할 곳이 없어서 지난번 판포 해변의
풍력발전기나 촬영하려고 카메라 배낭을 챙겼다.
바닷가여서 그런지 바람이 맵고 손이 아리는 것이 마치 겨울 한라산을
산행하는 느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기대했는데, 그러면 사진이 밋밋할까 봐
옥황상제님이 구름 몇 조각을 띄워주셨는가 보다.
오래전에 TV문학관에서 본 내용이다.
설총이 아버지인 원효대사가 거처하는 절에 찾아가
번뇌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고 하자 답변 대신 사찰 마당을 쓸라고 한다.
깨끗한 마당을 본 원효가 잘못 쓸었다며 낙엽을 한 아름 안고 가서 뿌리고는
“가을마당엔 낙엽이 더러 있어야 운치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