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31
2003년부터 사진 생활을 시작하여 올해로 13년째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을 카메라 가지고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거창하게 표현해서 내 사진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는 생각이 들곤 한다. 수준 높은 ‘경지’에 이르지도 않았고 공모전에 응모하여 입상한 적이 없으니 전문가의 비평을 받아보지도 못해서 내 사진이 어떤지 잘 모른다. 단 한 번, 사진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만 안 되었을 때 기상청에서 주관하는 기상 사진 공모에 포지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채운彩雲’ 사진을 응모하여 입선 - 입선은 상권 밖이다. - 하고 부상으로 십만 원 받았지만 형식이 잡히기 전의 사진이어서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 재능이 뛰어나거나 부지런하지도 않지만 필이 꽂히면 붙들고 늘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결과가 탐탁지 않아서 문제다. 아마추어이고 취미로 사진 생활 하는 거여서 우선 즐겨야 하는데도 너무 결과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결점도 작가의 개성일 수 있고 화면구성과 구도 또는 분위기가 그걸 덮는다면 수작이라 할 수 있는데 내 사진에 너무 비판적인 건 아닌지 모른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사진을 시작할 때 주로 촬영하는 소재는 꽃, (젊은)여인, 아기 등이라고 하셨다. 나도 마이크로 렌즈로 들여다본 미시의 세계에 홀딱 반해서 주로 야생화를 촬영하였고 차를 타고 가다가 만난 꽃은 장소를 잘 기억했다가 카메라를 가져가서 담기도 했다. 그리고 야생화 동호회에 가입하여 출사도 다니고 홈에 부지런히 사진을 올리고 댓글 달고 회원 전에도 참여면서 사진에 재미를 붙이다가 잘 찍고 싶은 욕심에 혼자 또는 마음에 맞는 친구나 몇 명이 단출하게 출사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동호회는 소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꽃보다는 풍경에 마음이 가기 시작하였다. 감동을 주는 사진은 꽃보다 풍경이었고 결과물이 마음에 들면 색온도를 바꿔가며 후작업하여 모니터 바탕화면으로 설정하고 오래도록 관찰하기도 했다.
나와 함께 대부분 사진 생활을 하는 죽마고우가 풍경 사진은 사기라고 말했었다. 그건 아마 후작업할 때 색의 농도와 색온도 조정에 따른 분위기의 차이일 것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풍경을 여러 작가가 촬영해도 똑같은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구도와 화면구성이 제각각이고 피사체의 색도 다르게 후작업 하므로 결국은 십인십색十人十色이 되기 마련이다.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를 텍스트로 한 음악으로 샤를 구노는 오페라를 썼고, 프란츠 리스트는 3악장의 교향곡으로, 그리고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칸타타도 오라토리오도 오페라도 아닌 장르가 모호한 연주회용의 파우스트의 겁벌劫罰을 작곡했듯이 표현방식은 작가마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야생화나 풍경을 촬영할 때 가감 없이 피사체의 색을 사실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는 사진가를 만났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카메라에 담는 순간 그 피사체의 색은 이미 원색이라 할 수 없다. RGB던 CMYK던 기기가 자연의 색을 재현하는 데는 색공간에 제한이 따르기 때문이다.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을 호가하는 오디오 기기로도 원음을 재생하지는 못한다. 일단 마이크로 레코딩한 음원이 필터링을 거쳐 프로듀서의 입맛에 맞게 조정되기 때문에 원음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나는 노란 색의 유채꽃을 주황색으로 보정하거나 일출봉의 거대한 바위를 초록색으로 입히지는 않지만 카메라로 촬영한 거의 사실적인 피사체의 형상에 더해서 노을에 물든 일출봉을 더 붉게 만들고 색온도를 조정하는 등의 작업은 색으로나마 현세를 이상 세계인 무릉도원화 하려는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이게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내 사진의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사진이 예술의 한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몰라도 꽃은 자연이고 그걸 캔버스에 또는 카메라에 옮겨 담는 것은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겉모습에 치중하여 나는 그 짓을 한다. 그런데 소는 자연이고 소의 코뚜레는 문화라고 말한 장자에 의하면 괜한 짓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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