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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색/사색의 글

죽마고우에게




죽마고우가 내 곁을 떠나려 한다.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이제 무거운 육신을 내려놓으려 한다. 같이 출사해서 촬영할 때는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친구가 먼저 촬영을 끝내도 가자는 말 없이 조용히 차에서 기다리고, 내가 촬영하고 싶은 데를 가자고 하면 두말하지 않고 동행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여럿이 출사하지 않고 늘 죽마고우와 같이 다녔다. 작년엔 갑자기 음악을 듣겠노라며 AV 앰프를 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파일도 주고 선배로서 오디오 조언도 해주었다. 좀 더 나은 소리를 들으려고 200만 원짜리 달리 옵티콘 6 스피커도 샀다. 그렇게 친구는 나와 함께 음악감상의 취미를 같이 하려고 해서 기뻤다.

 

그런데 작년 10월에 친구에게 전화해서 밥 먹자고 했더니 아들과 식사 약속을 했지만 같이 가자고 해서 처음으로 월남쌈을 먹었다. 헤어지면서 차에 오르다 말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나? 한라병원에서 CT 촬영 결과 간암으로 판정받았고 6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다네.’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내가 정말이야?’하고 물어도 친구는 말을 잇지 않았다. 산행하거나 오름으로 출사할 때 친구는 늘 뒤처지며 힘들어했다. ‘얘는 내가 고기 좀 먹자고 하면 살찐다고 해. 늘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운동은 하지 않고.’ 라고 친구 누나가 얘기했다. ‘별도봉이 집에서 가까우니 하루 두 번 오르내리면 되겠네.’ 하고 반은 농담 삼아 말한 것이 지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해서 위장이 안 좋은 줄 알았는데 간암 말기일 줄이야. 술 담배 안 하고 몸을 혹사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진단이다. 친구 큰 형님이 같은 병으로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가족력인가. 그 후 친구는 일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세브란스 병원 간암 전문의한테 진료받으러 간다고 했다. 오진일 수도 있으니 큰 병원에서 진단받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다만 치료 여부를 알기 위한 거라고 했다.

 

한 달여 후에 친구가 내려왔고 12월 초엔가 만났는데 피톤치드가 좋다고 해서 4.3 평화공원 인근 편백나무 숲길을 둘이 걷기도 했고 여러 번 밥도 같이 먹으며 얼른 낫기를 바랐다. 한라병원에 세 번 입원했었는데 한 번은 몰라서 못 갔고 두 번 병문안도 다녀왔다. 그런데 지난달 62일 인디카 회원이고 약사인 L이 내게 전화해서 친구가 낚시 갔다가 토했고 지금은 어지러워 걷지 못하고 있으니 병원에 데려갈 수 없느냐고 했다. 친구 누나와 통화한 후에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누나가 일 끝나고 오면 병원에 간다고 했다. 그 날 바로 한라병원에 입원했는데 뇌에 4cm의 종양이 생겨서 수술한다고 친구 누나가 알려줬다. 다음 날 수술은 잘 끝났는데 지혈이 안 된다며 며칠 후 재수술했고 다음 주에 일반 병실로 옮길 거라고 했지만 또 지혈이 안 된다고 하더니 이번엔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겨서 관을 꼽아서 고름을 빼낸다고 했다. 그렇게 또 몇 주가 지났고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면서 친구 누나가 중환자실에서라도 면회하라고 한다.

 

동네 벗들-Hong S. H, Lee Y. Ch, Lee H. S-과 함께 722일 병문안 가보니 우리와 눈도 못 맞추고 몸도 움직이지 못했다. Hong이 친구를 건드리면서 얼른 일어나야지.’ 했고, 나는 친구 귀에다 대고 나 종훈이야.’ 했지만 반응이 없다. 물티슈로 얼굴도 닦아주고 발 마사지도 해줬다. 친구 둘은 할 말을 잃고 넋나간 것처럼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친구 누나가 마땅한 영정 사진이 없다고 해서 2011514일 선돌 나도수정초 찍으러 갔다가 낙엽에 앉아 기다리는 친구를 찍은 사진으로 인화하여 액자에 넣고 24일 병원으로 가 친구 누나에게 전해주면서 면회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친구 얼굴을 보는 것인가. 기적이 일어나서 다시 출사도 하고 좋은 음악도 같이 들었으면 좋겠다. 손님 모시고 근처에 오게 되면 전화해서 차 한 잔 주시겠는가?’ 해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설날이면 친척 집에 명절 쇠러 왔다가 어머니께 세배도 드리던 친구인데. 훌훌 털어버리고 거짓말처럼 어서 일어나시게 친구야~




PS


오늘 오전에 Hong S. H로부터 자네의 부음을 들었다네.

거짓말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 같이 출사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오래오래 지내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급히 가셨는가.

 

62일 입원해서 뇌종양 수술받고 오늘까지 두 달 있으면서

한 번 일어나보지 못하고 말도 잃은 채 고통속에서

얼마나 두려워 하셨는가.

우리 넷이 자네 보러 간 날, 말 대신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보면서 자네 마음을 헤아렸다네.

 

오늘 자네 폰으로 아들로부터 부고 문자를 받았네.

장지가 한울누리공원이라고.

함께 출사한 어느 날, 죽으면 화장해서 아무 데나 뿌리라고

하겠다는 말 진심이었는가?

병원 갔을 때, 누나가 화장할 거라고 해서

내가 매장해주라고 했더니 자네 아들이

아버지 평소 유언이라며 화장하겠다고 해서 두 번 말 안 했네.

상복으로 검정 양복을 입을 거라고 했네.

 

死後滿盤珍羞不如 生前一杯酒라는 말처럼

투병 중일 때 더 통화하고 더 만나서 밥 먹지 못한 게 후회된다네.

부고 문자 받았을 땐 담담하더니 이 글 쓰면서 사진을 보니

슬프고 슬퍼서 흐느껴 운다네.

내일 마지막으로 자네 보러 가겠네.

편히 영면하시게, 둘도 없는 나의 죽마고우.


2017. 8. 3. 늦은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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