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와 섭지코지로 출사했던 사진
2011. 10. 1
2013. 9. 20
2013.9. 20
2013. 9. 20
어제 성산포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오후가 되어서야 경작하지 않은 시내 밭에 가서 무성한 잡초를 갈아엎으려고 밭 가장자리 풀만 베는 데 세 시간이나 걸려 취소하고 오늘 아침 식사 후 10시경에 출발했다. 성산으로 출사할 땐 새벽에 출발하여 일출봉이나 섭지코지 여명과 일출을 촬영해야 하는 건데도 요샌 사진 욕심과 열정이 식은 것 같다.
산간도로를 달리며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엔 가을 풀의 향기가 가득 실려 왔다. 광치기 해변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따가운 햇볕이 가시지 않은 올레길엔 문주란 꽃이 드물게 보이고 쑥부쟁이 같은 진한 향기가 갯내음을 덮는다. 멀리 보이는 일출봉 자락의 잔디밭도 이미 가을 색이 짙다. 동영상 광고에서 봤던 너럭바위를 전경으로 일출봉을 카메라에 담고 닭의장풀, 괭이밥, 그리고 쑥부쟁이가 핀 일출봉 탐방로를 따라 쉼터 전망대와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도 담았다.
광치기 해녀의 집에서 시원한 물회로 점심을 먹고 무릇 보려고 섭지코지로 향했다. 섭지코지 해안 도로 잔디밭에서 어머니와 말을 촬영했던 곳의 무릇이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옮겨 섭지코지 등대 뒤에 아담한 잔디밭에도 그 많던 무릇이 없다. 시든 게 아니고 군락이 사라진 것이다. 유채밭 옆의 쑥부쟁이도, 강아지풀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4, 6년 전에 죽마고우와 여기서 쑥부쟁이와 강아지풀 그리고 무릇도 담았었는데... 내 뒷모습을 찍어줬던 그도 없고 나 혼자 그때를 추억하며 여기 섰다. 친구가 가고 없으니 꽃도 갔는가. 아직 해가 중천에 있지만 둘러 볼 데도 없으니 집으로 가야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틀었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이 연주한 음원으로. 우울한 내마음 같다. 슬픈 곡은 아닌데 쇼팽의 풍부한 감성이 가을을 닮았고 내 마음이 우울해서 그렇게 들리는 거겠지.
우리 집 새끼 제비들이 궁금했다. 무더운 여름에 테라스 기둥의 둥지에서 네 마리가 태어나 시끄럽게 재잘거리며 먹이를 받아먹다가 날게 되자 낮에는 어미 아비와 날아다니고 밤에는 돌아와 세 마리가 빨랫줄에 서로 꼭 붙어 앉아 밤을 보냈다. 한 마리는 날기 전에 둥지에서 떨어진 걸 내가 다시 둥지에 올려줬는데 그 후로 보이지 않았다. 세 마리만 남은 지 열흘 정도 되었을까. 한 마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제와 그제는 강풍으로 보이지 않아 다시 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늦은 밤에 외등을 켜보니 한 마리만 외롭게 앉아있다. 강풍 불 때 외박하면서 한 마리가 또 잘못되었나 보다. 형제를 모두 잃고 너 혼자 외로이 밤을 보내겠구나. 그래도 찾아와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