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9월 17일, 태풍 덴바가 막 제주를 벗어난 시간인
오전 열한시 반경에 숙원 하던 천제연폭포를 촬영하러 갔는데
매표직원이 지금은 위험하기 때문에 관광객을 통제한다고 했다.
한림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 한 장 찍고 가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나 혼자만 입장시킬 수는 없다고 하는 거였다.
할 수 없이 나와서 여미지 주차장 안쪽으로 경계목이 빽빽한 틈을
두 개나 뚫고 전망대에 도착하니
이런! 삼각대를 차에 놓고 온 게 아닌가.
손각대로 몇 컷 찍었지만 폭포는 웅장한데 온통 흙탕물이어서
내일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나오다가 다른 직원을 만났다.
내가 주차장에서 몰래 진입로로 넘어가는 걸 본 모양이다.
혹시나 다친 줄 알았다고 했지만 통제구역으로 들어가니
감시하고 제재하는 것이다.
매표소 직원이 나를 보자 놀란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까 그녀석인 거 같은데...' 하는 표정으로 기웃거렸다.
어제는 화창하고 입구에서 통제할 일도 없어서 걱정이 없는데
단 하나 폭포사진은 날씨가 흐려야 물줄기와 주변 환경의 노출차가
적음은 물론 분위기도 괜찮을 건데 햇빛이 쨍한 게 거슬렸지만
이날이 아니면 웅장한 폭포를 찍을 수 없다.
도착해보니 물줄기는 약간 가늘어졌지만 수량도 풍부하고 맑았다.
삼각대를 세우고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기를 기다리며 촬영했다.
그런데 관광지여서 관람객들이 단체로 모여들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다.
폭포를 보자마자 여러 명이 탄성을 지른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셔터를 누르고 구름이 해를 가려주기를
기다리는데 가이드가 사진 찍어도 되냐고 한다.
자리를 비켜주고 그들이 돌아가자 다시 진을 치고 있는데
일본인 몇몇이 와서는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찍으며 한 사람이
내 삼각대를 발로 툭 차는 거였다.
일부러 그런 거 같지는 않았지만 난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더 촬영해서 원하는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돌아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삼각대를 발로 찬 사람은 사진 찍기 위해 나 때문에 포인트도 안 좋은
구석진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은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이기적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5분 안팎으로 시간을 내어 폭포하나 보기 위해 거기에 간다.
더구나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은 몇 달 전, 아니 몇 년 전부터 계획하고
경비를 마련해서 먼 여정에 올라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한답시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마치 전세 낸 것처럼
꿋꿋하게 버텼으니 그들이 즐기고 행복해할 권리를 내가 빼앗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사진생활 할 필요가 있는가?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 경화 역에서 벚꽃과 기차를 촬영하려고
사진 동호회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다 기차가 들어오자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하는 게 거슬렸던지 나오라고 소리치고 심지어 돌을 던졌다는
'예술가'와 내가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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