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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색/나의 음악실

Sinfonia Eroica

 

 

 

 

음악가가 소리를 못 듣는다 -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가.

26세 때 귀에 이상이 생겨 점점 소리를 듣기 힘들어지자 32세인 1802년에 베토벤은

동생 카를에게 저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쓴다.

절망에 빠진 그가 선택한 것은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25년을 더 산다.

그리고 작품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창작할 것이다.’라고 결심하고 탄생한 음악이

1803년에 착수하여 이듬해에 완성한 작품 55번의 교향곡 에로이카.

 

1787년에 발발한 프랑스대혁명은 봉건체제의 유럽 사회에 자유와 평등사상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고, 체제의 붕괴를 우려한 주변국의 침공에 승리한 나폴레옹이

1통령으로 정권을 잡자 베토벤은 자신의 이상인 공화주의가 유럽에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나폴레옹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작곡한 제3 교향곡 표지에 헌사를 덧붙이고 헌정할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에 격분한 베토벤이 헌사를 찢고

악보 표지에 적은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펜으로 긁어 새카맣게 칠했는데

표지에 구멍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는 신포니아 에로이카 - 어느 위대한 인물을 추억하며라고 적었다.

 

아홉 개의 교향곡 중 3E플랫장조, 5C단조, 6F장조, 7A장조, 그리고

9D단조는 한 음악가의 작품이 아니라 여섯 명의 다른 작곡가가 만든 것 처럼

각각 개성이 뚜렷하다.

어떻게 형식과 내용이 완전히 다른 음악을 한 사람이 쓸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는 고귀한 사상을 불어넣어 교향곡을 정점에 이르게 한 베토벤의 위대함이다.

 

1980년에 처음 이 곡을 들었다.

당시 음향기기인 카세트테이프 라디오에서 모노로 울려 나오는 음악에

사뭇 진지했었고, 시간을 두고 장중한 사운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제법 갖추어진 오디오 시스템으로 음악을 듣지만

어렸을 때,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면서 열악한 기기로 듣던 에로이카 교향곡이

뇌리에 각인되어 힘들거나 에너지가 필요할 때면 당연한 듯이 손이 가곤 한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마치 저 깊은 곳의 뜨거운 마그마가 이글이글 끓다가

마침내 화산이 폭발하여 거대한 용암이 분출하는 듯한 남성적인 힘과 개성이

피아노 협주곡 3번과 5, 그리고 삼중 협주곡과 더불어 다분히 베토벤 적이고

그 당당한 기개에 온몸이 전율한다.

9교향곡이 완성되기 전에 그도 이 음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사람들은 5번 교향곡을 회자한다고 하자 아니, 에로이카야!”라고 단언했듯이

베토벤 음악의 근간을 확립한 곡이라는 점에서 영원히 좋아할 수밖에 없다.

 

주로 듣는 음반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많은 음원 중에서 빈 필의 1944년 녹음인 일명 우라니아 판과

1952년 베를린 필의 두 가지가 좋고, 게오르그 솔티의 1959년 빈 필의 레전드 음반,

그리고 이고르 마르케비치와 심포니 오브 디 에어의 1957년 판이다.

푸르트벵글러의 우라니아 판은 열기가 넘치고, 베를린 필은 심포닉함이 두드러진다.

솔티는 빈 필의 유려한 음색과 적절한 템포, 그의 장기인 다이나믹한 해석이 특징이고

마르케비치는 활화산 같은 뜨거움이 마치 스피커를 녹일 것 같은 열정적인 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