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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색/나의 음악실

우주의 음악 - 안톤 브루크너에 대한 단상斷想

 

 

 

 

즐겨듣는 음악 가운데 거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독일 음악가 중 3B 즉, 루트비히 판 베토벤, 안톤 브루크너와 요하네스 브람스는 기악의 꽃이라는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들이고 모두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오직 음악에 헌신하여 교향곡 역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다. 지휘자가 이들의 교향곡 중 어느 한 곡에라도 정통하여였다면 그리고 명반을 남겼다면 그들 또한 위대한 지휘자라고 생각한다.


3B 중 브루크너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음반이 발매되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아 ‘브루크네리안’이라는 두터운 애호가층이 만들어졌다. 자신을 오스트리아의 야인이라 자처하여 비사교적이며 세상사와 명성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전념하였지만 당시 빈의 음악계를 주도하던 슈만과 브람스 등 반대파들의 공격을 받은 브루크너와 바그너의 음악은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 교과서에서 브루크너는 말러와 더불어 듣도 보도 못했었다. 교향곡의 한 악장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교향곡 한 곡 전체의 연주시간에 맞먹을 만큼 긴 데다 끝났나 싶으면 이어지며 60분 또는 80분이나 연주되는 엄청난 길이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깊은 세계를 서서히 이해하게 될 때 바로 이런 지루함이 매력으로 바뀌고 그렇기 때문에 브루크너를 듣지 않고는 못 배긴다.


다른 음악가와 달리 독특한 번호를 가진 00번과 0번의 습작을 거쳐 관현악에 자신을 가진 브루크너는 1866년 42세 때 교향곡 1번을 발표하여 미완의 9번까지 대장정의 길로 접어드는데 빈 음악계에서는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다가 1881년 57세의 나이에 초연한 ‘낭만적’이란 별명의 4번에 이르러서야 평가가 달라졌다고 하니 다른 음악가가 비중 있는 작품을 거의 끝냈거나 세상을 떴을 나이로 대기만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이 로맨틱 교향곡을 브루크너의 입문곡으로 추천하지만 나는 20대 중반에 9번 교향곡을 처음 듣고 서서히 압도되어 가장 아름답다는 8번을 50대에 본격적으로 들으며 브루크너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NASA에서는 외계의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믿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전파에 실어 끊임 없이 우주로 발사한다고 들었다. 더불어 브루크너의 8번도 베토벤 9번 못지않게 드넓은 우주에 어울리는 음악이라 생각한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힘차게 시작하지 않고 마치 아득히 먼 행성에서 들려오는 듯 희미하고 신비스런 금관악기의 여린 음으로 -특히 교향곡 4, 7, 8, 9번- 진행되어 마침내 광활한 우주처럼 거대하고 장중하게 포효하며 장강의 물줄기가 도도하게 흐르듯 출렁댄다. 오스트리아 린츠의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평생을 봉직해서인지 교향곡들도 오르간 처럼 묵직하고 웅장하게 울려 종교적인 성스러움으로 가득하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귄터 반트, 세르쥬 첼리비다케,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오이겐 요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등의 음반은 브루크너의 음악세계를 깊이 있게 표현한 명지휘자 들이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고 귀명창도 아니고 재능도 없지만 오이겐 요훔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의 LP음반을 20대 때 친구에게서 물려받아 틈틈이 들으면서 브루크너와 친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존경하는 음악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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