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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색/나의 음악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 - 모차르트 레퀴엠




1791년 봄, 정체불명의 남자가 모차르트를 찾아와 서명이 없는 편지를 건네주는데 레퀴엠 작곡을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남자는 사례금의 절반을 주며 완성했을 때 잔금을 치르겠다고 하고는 돌아갔다. 이미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병세가 깊었는데도 피아노 협주곡 27번과 클라리넷 협주곡을 완성하고 오페라 <마술피리><티토 황제의 자비>를 초연하는 등 바쁜 해였다. 하지만 예의 그 남자가 자꾸 떠올라 모차르트를 괴롭혔고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될 거라는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 채 그해 9월 작곡에 착수하여 12월에 꺼져가는 생명을 다그치며 악보를 그리던 손은 여덟 번째 곡 라크리모사(Lacrimosa 눈물의 날)’의 여덟 마디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125일 새벽 한 시에 숨을 거두었다. 예감대로 자신의 레퀴엠이고 백조의 노래가 된 이 미완성의 음악은 애제자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 1766~1803)가 스승의 유언을 받들어 모차르트의 악상을 더듬으며 완성했다. 쥐스마이어 외에도 바이어(Beyer), 랜던(Landon), 레빈(Levin), 드루스(Druce), 몬더(Maunder), 스즈키(Suzuki), 코어스(Cohrs) 등의 판본이 있다.

 

1984년 전 세계에 영화 아마데우스 열풍이 불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다 아카데미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K와 관람하기로 하고 관덕정 앞 동인 커피숍에서 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날은 커피숍이 휴무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커피숍 문 앞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친구에게 공중전화로 연락했더니 여동생이 받고 30~40분 전에 출발했다고 했다. 그땐 무선호출기도 휴대폰도 없던 때라 공중전화 외에는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또 몇 분을 더 기다리다 혼자 표를 사고 상영 중인 영화가 끝나기 몇 십 분 전에 안으로 들어갔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화면 가득 모차르트의 관이 운구되며 나중에 안 라크리모사의 슬픈 합창이 영화관 가득 울리고 있었다. 이어 마차에 실린 관은 공동묘지로 운구되어 자루에 담긴 여러 구의 시신이 쌓인 구덩이에 모차르트의 시신도 버려지고관은 재활용하기 위해 가져간다. 이렇게 해서 영화에서처럼 인류는 비발디와 함께 모차르트도 시신이 없는 무덤을 만드는 패륜을 저지르고 말았다.

 

다음 날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나와 같은 시간에 영화를 봤다고 했다. 언젠가 친구 M과 함께 K 집에 놀러 갔는데 종훈이는 만나면 모차르트, 베토벤 이야기만 하고 M은 공자, 맹자 말만 한다고 정색을 하고 이야기했다. 나와 M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그 후 K를 만나지도 않았다. 한 달가량 지났을까? 친구 K가 집에 놀러 와 미안하다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해 여동생이 내게 전화해서 오빠가 인천의 하숙집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대학생이던 꽃다운 스물두 살의 나이었다. 그의 여자 친구도 충격을 받고 수녀가 되어 한림 이시돌의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땐 별것 아닌 일인데도 삐졌었다.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하며 그의 손을 잡았어야 했는데 어렸기 때문이라고 합리화 해보지만 친구 K가 없는 지금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마데우스를 보고 나서 교향곡 25번과 레퀴엠의 애청자가 되었지만 레퀴엠을 들을 때마다 요절한 친구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존 엘리엇 가디너가 소편성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으로 연주한 음반은 쾌적한 템포에 맑고 순수한 레퀴엠을 들려주었다. 레너드 번스타인, 게오르그 솔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음악도 좋지만 칼 뵘이 빈 필과 연주한 음반에 애착이 간다. 그리고 이 음반은 나의 입문 판이다. 느리고 비통함만을 강조했다는 비평도 받지만 모차르트의 스페셜리스트인 대 지휘자가 깊은 경외감과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이 불멸의 음악가 영전에 봉헌한 것이다. 뵘은 생전에 모차르트 모든 작품의 악보를 필사하였는데 애정이 깊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내가 만약 길가다 베토벤을 만난다면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고개숙여 인사하겠지만 모차르트를 만나면 기절하고 말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슬픔에 젖어 조용하고도 느리게 비틀거리듯 읊조리고 남성 합창이 ~ 퀴엠~’하며 비장하게 토해내면 난 울컥 해진다. 또 모차르트의 붓이 멈춘 라크리모사를 들을 때면 울지 않을 수 없다. 케루비니, 브람스, 베르디, 포레의 레퀴엠도 좋지만 나를 울린 건 모차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