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의 음악은 어둠의 그림자가 거의 없다. 어떤 작품을 들어봐도 구김살 없고 명랑하며 행복이 묻어난다. 그건 모차르트의 음악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모차르트가 동화童話 같다면 멘델스존은 밝게 채색한 수채화水彩畵라고나 할까.
막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고2 때, 중앙로 현대약국 옆에 미성사라는 레코드가게가 있었는데 점원에게 무턱대고 ‘바이올린 독주곡’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독주곡은 없고...’ 하면서 멘델스존과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커플링 된 카세트테이프를 주는 거였다. 이차크 펄만의 바이올린과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 심포니의 음원으로, 테이프 살 테니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짧은 서주에 이어서 마치 두루마리 화장지가 풀리듯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꽤 마음에 들어 기분 좋게 값을 치렀고 나의 첫 바이올린 협주곡이 되었다. 전 3악장이 쉬지 않고 이어서 연주되지만 듣기에도 악장 구분은 확실히 된다. 멘델스존의 대표작이고 이 분야에 금자탑을 세운 명곡이라 여긴다.
명곡인 만큼 추천하는 명반도 많지만 처음 들었던 펄만의 바이올린이 잊히지 않는다. 다만 3악장에서 팀파니의 과장된 타음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절판되었다가 재발매 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이후 펄만이 하이팅크와 협연한 음반도 좋은데 고역이 거슬려 전곡 듣기가 부담스럽다. 오디오 시스템이 좋지 않아서인가 했는데 FM 방송에서 들어도 똑 같아 녹음의 문제인 것 같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유진 오먼디 판은 1955년의 모노지만 테크닉이나 표현력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연주다. 1957년 녹음인 마이클 라빈과 아드리안 볼트의 음반도 테크닉을 과시하지 않는 여유로운 템포와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음색이 돋보이는 명연이다. 요절하지만 않았다면 좋은 음반을 많이 남겼을 텐데. 요한나 마르치와 한스 뮐러-크라이의 1959년 음반도 좋고 야사 하이페츠와 샤를르 뮌시는 쾌적한 템포로 단숨에 몰아치듯 끝냈지만 투명하고 서늘하며 완벽한 기교의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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