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길을 걸을 때나 운전할 때 또는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악은 거의 3B, 즉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의 선율들이다. 이들 모두가 일생을 독신으로 보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들의 음악이 유독 내 가슴을 파고든다. 오늘은 지난 6월 28일에 포스팅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이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그리고 다음번에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게시하려고 한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우리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듯이 추상적인 음악에도 어떤 의미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3대 교향곡 또는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부르며 이들 음악이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났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틀을 만들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급한 3B 음악가도 같은 맥락이지만 나는 이렇게 부르는 걸 부인도 공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자칫하면 3대 교향곡 외의 다른 교향곡들은 별 볼 일 없거나 우열이 있는 것처럼 편견을 가질 수도 있으므로 이런 구분에 얽매이지는 않아야 한다. 이렇게 늘어놓는 이유는 베토벤의 협주곡이 멘델스존, 브람스와 더불어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더해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도 한다.
브루크너는 잘 모르겠고 브람스는 그의 스승 로베르토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 ‘플라토닉 러브’에 빠져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베토벤은 1806년 5월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귀족 가문의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와 약혼을 했다. 로맹 롤랑의 말처럼 ‘사자는 사랑에 빠졌다.’ 이 시기에 완성된 곡이 슈만이 말한 ‘청순한 그리스의 소녀’ 같다는 교향곡 4번과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4번 교향곡의 작품번호는 60번이고 바이올린 협주곡은 61번으로 테레제와의 행복과 기쁨 그리고 평온함이 두 곡에 충만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테레제와의 약혼은 파혼되었고 둘은 독신으로 평생을 살았다.
스물세 살 되던 해에 학력고사를 치르려고 입시학원에 등록하고 제주 시내에 자취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주인과 함께 안채의 방 하나와 작은 부엌을 썼고 작은 별채 두 채에는 젊은 부부와 자매가 각각 생활했다. 어느 여름날 별채의 자매 중 언니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밤에 빵 먹으러 가자며 나를 꼬였다. 그날은 셋이 서문다리 근처 빵집에 가서 찐빵 먹고 온 게 전부다. 친구는 예뻤고 별채의 여인은 허리도 약간 꾸부정하고 얼굴이 아줌마 같았다. 둘 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데 여고 동기고 동향이며 친구는 남동생과 자취한다고도 했다. 며칠 후 별채의 여인 친구가 내 방문을 노크하며 ‘나 왔수다.’ 했다. 둘이 밖으로 나가 밤늦게 쏘다니다 공원에서 쉬는데 전경한테 걸려 주인집으로 끌려오다시피 했다. 지금도 난 그 전경과 함께 강제로 귀가한 이유를 모른다. 그리고 얼마 후 대낮에 별채의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카세트테이프를 보고 빌려와서 들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연주한 음원으로 1악장이 녹음된 전면은 음질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음반을 계기로 오이스트라흐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빠지게 되었다.
명곡이지만 뛰어난 연주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오데사에서 태어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과 앙드레 클뤼탕스가 지휘한 프랑스 국립 방송교향악단은 많은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음원이라고 생각한다. 관현악이 약간 거친 면도 있지만 바이올린은 누구나 홀딱 반하게 만든다. 선이 굵으면서도 아름답고 감미로우며 아무리 어려운 테크닉도 마치 비단에 수를 놓듯 자연스럽게 연주하여 천의무봉天衣無縫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오이스트라흐의 장기이며 매력이다. 클뤼탕스 또한 오이스트라흐와 더불어 후덕하며 고매한 인격을 가졌으므로 이 곡의 연주자로 맨 먼저 내세우고 싶다. 헨릭 세링은 안탈 도라티, 한스 슈미트-이세르슈테트와의 음반도 좋지만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지휘한 암스테르담 콘세르드헤보우 반이 더 정상에 이른 것 같다. 감정이입이 지나치지 않고 품격이 있어서 오이스트라흐에 비견될 명반이다. 야사 하이페츠와 샤를르 뮌시 지휘 보스톤 교향악단은 하이페츠의 기교가 완벽하나 템포가 빠르고 가볍게 들려서 베토벤의 이미지와는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거의 듣지 않는다. 사족으로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이브, 베토벤의 협주곡을 아담에 비유하는 건 멘델스존은 여성스럽고 베토벤은 힘찬 남성미를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성경과는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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