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에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 이후에 영국은 내세울 만한 음악가가 없었는데 낭만주의 시대에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 그리고 근현대에는 엘가(Sir Edward Elgar 1857~1934), 딜리어스(Frederick Theodore Albert Delius 1862~1934),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 홀스트(Gustav Theodore Holst 1874~1934), 케텔비(Albert William Ketelbey 1875~1959),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 등이 활약하면서 영국의 자존심을 세워주었고 그들 중 엘가, 본 윌리엄스, 홀스트, 브리튼이 돋보인다.
행성(Planets)은 홀스트의 대표작인 대규모의 관현악곡으로 1913년 스페인을 여행할 때 클리포드 백스(Clifford Bax, 1886~1962)에게 점성술을 배우면서 깊이 빠져들었고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는 이듬해에 작곡에 착수하여 2년 후인 1916년 홀스트의 나이 42살에 일곱 개의 모음곡으로 완성했다. 각 곡의 제목과 부제를 1곡 화성Marsㅡ전쟁을 가져오는 자, 2곡 금성Venusㅡ평화를 가져오는 자, 3곡 수성Mercuryㅡ날개 달린 사자(使者), 4곡 목성Jupiterㅡ쾌락을 가져오는 자, 5곡 토성Saturnㅡ노년을 가져오는 자, 6곡 천왕성Uranusㅡ마술사, 7곡 해왕성Neptuneㅡ신비주의자 등으로 붙인 걸 보면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특징을 표현한 게 아닌 점성술의 영향임을 짐작게 한다. 사족으로 혹성(惑星)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일본식 표현이다.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는 천체를 행성(行星)이라고 일컫는 우리말을 두고 행성(行星:떠돌이 별)과 항성(恒星:붙박이 별)의 발음이 같아서 한자를 만들어 쓰는 일본식을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다.
브루크너와 말러의 교향곡처럼 행성도 20세기에 오디오와 레코드 산업의 발전으로 대중에게 파고들었다. 1918년 이 곡을 비공개로 초연한 아드리안 볼트를 비롯한 카라얀, 뒤트와, 마리너, 오먼디, 프레빈, 데이비스 등의 호평 받는 음반 중에서 -뒤트와, 마리너, 프레빈, 데이비스 판은 들어보지 못했다.- 볼트가 5회째 녹음한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는 이 곡의 규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많은 애호가들이 카라얀과 베를린 필을 좋하는 것으로 안다. GO CLASSIC 사이트에 올라온 평가를 봐도 한결같이 창찬 일색이다. 어떤 애호가는 인간의 경지가 아니라고까지 극찬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평범한 연주는 아니나 작위적으로 부풀린 음향은 단단함이 빠져서 공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성, 토성, 해왕성 등 느리고 조용한 곡에서의 신비감은 최고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전체가 균형잡힌 연주는 빈 필하모닉과 녹음한 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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