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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색/나의 음악실

영혼을 정결하게 - 월광 소나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가운데 14번 월광 소나타는 세인의 관심을 많이 끈 대중적인 작품이다. 1800년과 1801년에 각각 13번과 14번을 완성하여 작품번호 27로 두 곡을 묶어서 베토벤이 환상곡풍(Quasi una fantasia)의 소나타라는 제목을 붙이고 1802년에 출판하였다. 그런데 월광이라는 표제는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 5년 후에 독일의 음악 평론가이며 시인인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이 곡의 1악장을 가리켜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달빛 비친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 같다.'는 논평을 했고 그 후 10여 년이 지나 독일과 영국에서 월광 소나타라는 부제를 붙여 출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베토벤이 어느 눈먼 소녀를 위해서 즉흥적으로 작곡했다는 이야기는 월광 소나타에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일화로 들리지만 사실은 홍난파 선생의 창작글을 해방 후 문교부에서 채택하여 국민학생 수준에 맞게 편집하고 5학년 국어 교과서에 월광곡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데서 기인하며 내용은 이렇다.


'베토벤이 가을 달밤에 산책하다가 어느 오두막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눈먼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소녀의 평생소원은 베토벤이 피아노 연주하는 곡을 듣는 거라고 말하자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였고 소녀는 베토벤임을 직감하여 한 곡 더 부탁했다. 촛불이 꺼지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피아노 건반을 비추고 있는 분위기를 살려 즉흥적으로 곡을 연주하여 소녀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오두막에서 연주한 곡을 악보로 옮겨 완성한 음악이 월광곡이다.' 

 

난 이 음악을 고등학교 때 카세트테이프로 처음 들었다. 하지만 별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의 휴대용 플레이어에 내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이어폰으로 듣는 순간 스테레오로 재생되는 제르킨의 몽환적인 음악에 매료되었다. 


명곡이어서 음반이 많지만 내게 있는 음반 또는 음원은 빌헬름 박하우스, 루돌프 제르킨, 빌헬름 켐프, 프리드리히 굴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에밀 길레스 등이다. 그 가운데 제르킨, 굴다, 길렐스의 연주를 좋아한다. 1악장ㅡ제르킨의 연주는 마치 선선한 가을 달밤이 연상되며 쓸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다. 템포도 적당하고 바깥으로 감도는 서정성은 독보적이다. 굴다는 조금 느린 템포에 슬픔이 어려있지만 피아노의 터치는 산뜻하다. 길렐스는 감정이입을 배제한 연주다. 


2악장과 3악장ㅡ제르킨은 가볍다. 특히 3악장에서 몰아치는 힘이 부족하다. 길렐스의 2악장은 무난하지만 3악장의 중후한 터치와 마치 호수에 광풍이 부는 것 같은 파워 감은 대단하다. 굴다의 2악장은 표정이 있고 3악장 연주는 휘몰아치면서도 음의 균형이 흐트러짐 없고 디테일도 살아있다. 1악장은 제르킨, 2악장은 굴다, 3악장은 길렐스가 좋다. 한 장을 고르라면 굴다의 연주다.